Raison
한 때 즐겨 피웠던 담배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에겐 친근한 디자인이기도 하고, 한모금 빨았을 때 맛도 꽤 괜찮다.
디스는 뭔가 피우고 났을 때의 비릿함이 거슬리고, 에센이나 원은 피우고 났을 때 내가 정말 담배를 피운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남는다. 말보로와 던힐은 맛은 괜찮지만 애국심 때문인지 마음 편히 피울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세븐 스타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에서는 팔지도 않는다.
레종은 그래도 국산 담배이기도 하고 맛도 괜찮은 담배라서 오랫동안 내가 피웠던 담배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연상되는 Raison D'etre.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에 Raison D'etre(레종 데르트; 존재 이유)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한동안 불어를 배웠었는데 Raison D'etre는 내가 외웠던 몇 안되는 단어 중 하나다. Raison은 영어에서의 Reason에 해당한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Raison D'etre가 나오는 부분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다.
내가 세 번째로 잤던 여자는 내 페니스를 보고 "당신의 레종 데트르"라고 불렀다.
나는 전에 인간의 존재 이유를 테마로 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결국은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동안 줄곧 인간의 '레종 데트르'에 대해서 생각했고 덕분에 기묘한 버릇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모든 사물을 수치로 바꿔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버릇이였다. 약 여덟 달 동안 나는 그런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전철에 타자마자 승객 수를 헤어렸고, 계단 수를 전부 헤아렸고, 시간만 나면 맥박 수를 쟀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1969년 8월 15일부터 이듬해 4월 3일 사이에 나는 강의에 358번 출석했고, 섹스를 54번 했고, 담배를 6921개비를 피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그때 나는 그런 식으로 모든 걸 수치로 바꿔 놓음으로써 타인에게 뭔가를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의 개비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나의 페니스 사이즈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흥미 같은 걸 갖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6922개비째의 담배를 피웠다.
오늘 나는 레종 한갑을 샀다.
새로 나온 한정판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샴 고양이가 있었던 까닭도 있었지만, 요즘 내가 나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줄곳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담배의 존재 이유는 명확하다.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 것을 사는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한 모금 빨고 싶지만 지금 내겐 라이터가 없다.
후훗, 아직까지는 금연이 이어지는군.
알 수 없다.
나의 존재 이유도.
내가 금연을 하는 이유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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